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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가방끈이 길어졌습니다만∨전선영

이름없는 꽃 2022. 11. 22. 22:44

도넛이 도넛인 이유

김수연 작가는 <청춘의 문장들>이란 책에서 이런 말을 했다.

도넛을 먹는 건 도넛의 살을 먹는 게 아니라 중간의 동그란 빈 공간을 먹는 것이라고.

빈 공간을 지나다니며 도넛을 맛있게 했을 그 공기를 느끼는 것이라고.

혼자 떨어져 나와 살면서 내가 이곳에서 가질 수 없는 것들의 빈 공간을 느낄 때,

그 어느 때보다 그것들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깨닫는다.

 

낭비

사전을 찾아보면, 헤프게 쓰는 것도 '낭비'지만, 가진 것을 헛되이 하는 것도 '낭비'라고 한다.

시간이든 돈이든 젊음이든 움켜쥐고 쓰지 않으면 그야말로 '쓸데없어'지는 것이다.

다만, 그 '쓸 데'가 어디인지 결정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 가치를 써서 더 값진 것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남는 장사이고, 여유의 비결이 아니겠는가.

 

가야 할 길이 너무나 아득하게 느껴지는 날에도,

 

그 길고 길었던 겨울, 가장 힘든시간은 내가 눈치채지 못하는 새

정말 한풀 꺾여가고 있었던 것일까.

인생의 아름다운 것들은 늘 그리 쉬이 찾아지지 않는다.

마치 끝없는 우울의 한 중간에 갇혀버린 것 같았던 시간.

그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내팽개치지 않고, 끝을 향해 매일 한 발자국씩 걸어가는 일.

가야 할 길이 너무나 아득하게 느껴지는 날에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에도,

그저 억지로라도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나오는 일.

그 짧은 순간들이 모이고 또 모여, 아주 조금씩 어둠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

.

그토록 추웠던 날들, 어두운 땅속에서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날들이야말로 실은 봄이었음을.

내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 그때 바깥에서는 이미 따뜻한 바람이 희미하게

일렁이고 있었다는 사실도.

 

벼락을 견디며 붉어져 간다는 말

땡볕을 끌어안으며 영글어간다는 말.

벼락을 견디며 붉어져 간다는 말.

내 안의 어딘가에는 이 더위를 견뎌낼 생명력이 아직 남아 있을 거라고.

이렇게 다음 계절을 기다리는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여보았다.

 

텅 빈 곳을 채워가야 하는 삶

짐을 다 빼고 텅 빈 연구실 바닥에 혼자 잠시 앉았다.

낯선 곳에 떨어져 텅 빈 곳을 채우는 일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반복하게 될까.

빈 공간을 꽉 채우고 난 후에야 비로소 삶이 시작될 것 같아서 많이 조급해했던 7년 전.

실은 채워가는 그 모든 순간이 삶이었음을 이 연구실에서 배웠다.

다시한번, 낯선 도시에서 텅빈 곳을 채워가야 하는 삶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어떤 일이 벌어질 지는 알 수 없지만, 이번에는 좀 더 여유있게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일 뜰 가장 멋진 태양을 기다리며 잠드는 것.

힘든 백패킹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캘리포니아에서도 아주 멋진 시간을 만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한 번도 가본 적없는 먼 곳에 짐을 풀고, 내일 뜰 가장 멋진 태양을 기다리며 잠드는 것.

눈을 뜨면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마친 후, 내 몫의 짐을 챙겨 다시 길을 떠나는 것.

자는 것과 먹는 것이 조금 불편해도 기꺼이 그것을 견뎌내는 삶.

내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뭉쳐 자신감을 만들어내는 젊음의 한 시절.

캘리포니아에서 보내는 매 순간이 부디 그러하기를,

 

 

생소한 문제를 마주하는 때야말로 새로운 발견의 기회

 

교수인 로버트는 그 답안지를 눈으로 스캔하다가 대뜸 '차를 한 잔 함께 하지 않겠느냐'고 초대를 한다.

헤더는 자신의 풀이가 방향이라도 맞았는지 알고 싶어한다.

그때의 대화가 아주 인상 깊어 기억하고 있다.

 

"제가 방향을 올바로 잡긴 했나요?"

"솔직히 말하면 근처에도 못 갔어요. 나도 일년이 걸려서야 완성했어요."

"그런데 뭣 때문에 우리한테 그런 문제를 내신 거에요?"

"자만심은 물리학자에게 가장 큰 방해 요인이지요,

뭔가를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순간,모든 발견의 기회를 없애버리게 되니까요."

"제가 잘못 풀었으면 왜 저를 초대하셨어요?"

"시험을 끝낸 유일한 학생이니까. 헤더는 풀이를 제출한 유일한 학생이에요.그게 시험이었어요. 헤더는 그걸 통과했고요."

 

 

삶이 불확실하고 생소하게 느껴질 때 가끔 이 대화가 떠오른다.

생소한 문제를 마주하는 때야말로 새로운 발견의 기회라는 사실을 상기할 때. 

또 멋지게 문제를 풀어내지 못했더라도 계속해서 답안지를 제출해내는 것이 진짜 시험이란 것을 명심할 때.

절망이 가시고 희망이 찾아온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배움의 기회는 늘 완벽하게 온다.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느라 배움의 기회를 내 발로 차버린 적은 지금껏 대체 얼마나 많았을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었을까.

완벽한 발표는 아니었어도 유난히 기분 좋은 퇴근길이었다.

 

이런방식으로 여러분의 삶을 채우기 바랍니다

 

예전에 온라인에서 봤던 어느 노교수님의 강의('Rocks,Pebbles,and Sand')가 생각난다.

교수님은 강의실에 큼직한 돌멩이가 꽉 차 있는 유리 항아리를 들고 들어와서 물어보셨다.

"이 항아리가 가득 찼나요?"

학생들은 "네!"라고 대답했다.

그때 교수님은 작은 자갈들을 가져오셔서 가득 찬 줄로만 알았던 그 항아리에 넣으셨다.

자갈들이 큼직한 돌멩이 사이를 메우면서 들어갔다. 교수님은 다시 물어보셨다.

"이제 이 항아리가 가득 찼나요?"

학생들은 다시 "네!"라고 대답했다. 교수님은 마지막으로 모래를 가지고 오셔서

더 이상 공간이 없는 것 같았던 항아리에 넣으셨다.

돌멩이와 자갈 사이사이를 모래가 꽉 메웠다.

"항아리가 가득 찼나요?"라고 교수님이 물으셨을 때 학생들은 또다시 "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 교수님은 "이런 방식으로 여러분의 삶을 채우기 바랍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일단 당신에게 중요한 것(=돌멩이)을 최우선시해서 먼저 당신의 삶(=항아리)을 채우세요.

그리고 좀 덜 중요한 것들(=자갈)로 삶의 남은 공간들을 메우세요. 가장 작고 하찮은 것들(=모래)은

맨 나중에 넣어도 결국 다 들어가게 되지요. 처음부터 작고 하찮은 것들(=모래)로 삶을 채우면 가장

중요한 것들을 채울 수 있는 공간이 남질 않아요."라고.

 

지금의 내 일을 사랑한다는 사실.

지금의 내 일을 사랑한다는 사실.

매일 그 일을 위해 노력할 24시간이 있다는 사실.

그 노력을 통해 이 일을 더 사랑하게 되리라는 기대감이 내겐 큰 행복이다.

이제 프로듀서가 되지 못한 내 삶도 괜찮다고,

지금의 내 삶도 의미가 있는 거라고 억지로 합리화하지 않아도 괜찮다.

진심으로 괜찮아졌으니까.

물론 매일 일을 하다 보면 미친 듯이 행복한 순간보다는 짜증 나고 때려치우고 싶은 순간이 자주 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건 짜증과 싫증의 반대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상위개념이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사랑이라는 커다란 단어 안에 어찌 설렘과 흥분같이 좋은 것만 들어 있겠는가.

짜증과 싫증 같은 것들도 뒤섞이면서 비로소 사랑이라는 색과 깊이가 더해지는 게 아니겠는가.

 

 

더 많은 사람을 내 삶에 초청하고, 또 더 많은 헛된 시도를 하면서,

 

산다는 건 비극적 결말에 장악당하지 않고 순간순간 찾아오는 기쁨을

환영하는 걸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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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람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줄 알면서도 먼 길을 떠나고,

뭔가 극적인 변화는 없을 줄 알면서도 끈임없이 새로운 시도들을 하고,

다시 혼자가 될 줄 알면서도 새로운 사람을 자신의 인생에 초청하면서, 다들 그렇게 용감하게 살아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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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이 반복되어 결국에 순이익은 0이 된다고 해도, 산 것과 살지 않은 것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내겐, 산다는 게 여전히 아름답고 긍정적인 사건 같다.

 

하물며 통계학에도 다른 종류의 0을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

데이터에는 다 똑같이 0이라고 나타나더라도 그게 다 똑같은 0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지난주에 맥주를 몇 병이나 마셨습니까?"라는 질문에 두 사람이 모두 '0'이라고 대답했다고 하자.

데이터상에서는 두 사람의 대답은 똑같이 0이라고 나타난다.

하지만 한 사람은 평생 아예 맥주를 입에도 대지 않는 사람이고, 다른 한사람은 원래 맥주를 너무 좋아하지만

체중감량을 위해 가까스로 참아낸 사람이라고 할 때, 그 두 0을 다르게 취급하는 테크닉이 있다.

하물며 컴퓨터도 코딩 한 두줄만 보태면 그 둘은 분간해내는데, 어찌 이 다양한 사람들이 비슷하게 산다고 해서

그저 같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할 수 있으리.

 

힘든 날이 있더라도, 또 결말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지라도,

더 먼 길을 가보고 더 많은 사람을 내 삶에 초청하고, 또 더 많은 헛된 시도를 하면서,

앞으로의 남은 날들도 그렇게 용감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출처: 도서 어쩌다 가방끈이 길어졌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