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송송꽃잎탁
사물의 뒷모습∨안규철 (2) 본문

[주어가 없는 세상] p97
어떤 행위를 서술하는 문장에는 그 행위의 주체가 되는 주어가 있다.
그러나 '바람이 분다' '봄이 온다' 같은 문장들의 주어는 '나는 걷는다'와 같은 문장의 주어와는 다르다.
그것들은 문법적이고 형식적인 주어이지만, 그것들이 보여주는 행위는그들의 의지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그것들에는 그런 의지 자체가 없다. 바람이 부는 것은 바람이 원한 것이 아니고, 봄이 오는 것은 봄이원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배후에는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어떤 다른 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다른 주어가 있다.어떤 다른 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다른 주어가 있다.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자연의 법칙이라고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신의 섭리라고 할 것이다.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의 사정이 이러하다.그런데 사물이 아닌 인간이 주어의 자리에 놓일 때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자기 아닌 다른 것의 의지에 의해 등을 떠밀려서 주어의 자리에 서지만 진정한 주어는 뒤에 숨어있는 경우가 많다.'나는 걷는다'고 할 때, 걸음을 걷는 주체는 '나'이지만, 그 뒤에는 내가 걷도록 만드는 제3의 주체가 있다.이를테면 두려움- 뒤처지는 것에 대한, 멈춰있는 것에 대한, 걷지 못하게 되는 것에 대한-이 나를 걷게 한다고 문장을 바꿔 쓰면, '나'는 곧바로 주어의 자리에서 밀려나고 만다.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은 어쩌면 개인을 면목상의 주어의 자리에 앉히고 실은 영원히 무언가의 목적어로 살게하는세상인지 모른다. 진정한 주어가 없는 세상.누구도 주인공이 아닌 세상. 욕망이나 두려움처럼 보이지않는 것들이 유일한 주어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세상.

[소음에 대하여] p105
이른 새벽에 세상은 고요한 것 같지만 소리는 잠시도 멈추는 법이 없다.
속삭임,혼잣말,탄식과 탄성,잡담과 농담,비난과 욕설,비명과 아우성,주장과 명령, 하나 마나 한 빈말과 말이 아닌 말,
앵무새처럼 외워서 하는 말과 지켜지지 않을 약속의 말들, 누군가가 시켜서 할 수 없이 하는 말과 침묵을 견딜 수 없어서
하는 말들이 세상 어딘가에서 쉴 새 없이 생겨난다.
우리가 만들어놓은 사물들도 저 나름의 소리를 내고 자연은 자연대로 소리를 낸다.
천둥과 비바람과 파도 소리가 있고 꽃잎이 떨어지는 소리가 있고 애벌레가 껍질을 벗고 날아오르는 소리가 있다.
공간은 마치 낱장으로 분절된 책처럼 이 모든 소리를 분리하여 우리가 원하는 소리만을 듣게 한다.
그밖의 모든 소리는 차단되거나 미세한 소음으로 문밖에 남는다.
그렇게 우리는 피아노 소나타를 듣고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다.
우리가 듣고자 하는 말이나 음악을 위해서 정적과 침묵은 빛과 같고, 소음은 그 소리를 집어삼키는 어둠과 같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만드는 소리의 총량이 끝없이 증가하고 우리에게 허용되는 고요함의 공간, 정적의 총량이
끝없이 감소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소리들은 의미가 되지 못한 채 우리의 입에서 흘러나와 소비되는 소음이 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거대한 잡음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그럴수록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더 큰 소리를 낼 수밖에 없고, 저마다 내는 더 큰 소리들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이다.
이 악순환의 딜레마에서 빠져나오려면 결국 우리는 더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무의미한 말을 줄이고 침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머그컵] p157
머그컵에 담긴 커피의 온기가 컵을 감싸 쥔 손에 전해진다.
뜨거운 커피의 온도로 따뜻해진 컵은 그 온도의 일부를 나에게 전해준다.
일종의 중계, 뜨거운 커피와 내 손의 피부 사이를 중재하는 것이 머그컵의 일이다.
보온병은 내부의 온도를 외부로 전해주지 않는다.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는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도 알 수 없다.
내부 비밀을 절대 발설하지 않는 무표정과 과묵함은 보온병의 미덕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유리한 것은 대체로 이쪽이다.
남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우리는 배운다.
그래서 안으로 꼭꼭 숨은 개인들, 웬만해서는 말을 하지 않는, 단단한 침묵으로 무장한 인간들이 만들어진다.
집의 창문이 작아지고 담장이 높아진다.
가면을 쓰지 않은 채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경솔한 일이 된다.
무엇이 되었든 손안에 남이 모르는 패를 많이 가져야 유리한 게임이 우리의 사회적 관계를 지배한다.
이런 세상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은 무호한 일이다.
부끄럽고 보잘것없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스스로 지는 게임을 자초해야 하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자기내면의 온도를 전하는 것, 모르는 사람에게 따뜻한 손을 내미는 것,
그러기 위해 부도체가 아닌 특별한 그릇을 만드는 것, 그것이 예술가의 일이다.

[이명] p169
노트에 한 줄도 쓰지 못하고 며칠이 지나면, 이렇게 끝날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엇갈리며 마음이 편치 않다.
쓰고 그리는 일은 나에게서도 언젠가 반드시 끝이 날 것이고, 그 끝은 당연히 이런 날들과 함께 시작될 것이다.
어느 시인이 "너를 보려고 이제 눈을 감아야 하나"라고 썼듯이, 뭐라도 하나 반짝이는 것을 건지려면,
낮의 소란과 번잡과 모욕을 밤의 적막과 어둠으로 씻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른 새벽 어스름 속에 혼자 일어나 앉아 하나의 철자,하나의 단어, 한 줄의 문장이 저 지평선 너머에서
떠오르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다.
그래도 어떤 날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혹은 나에게 말없이 다가왔던 어떤 것을, 지난밤의 기억나지 않는 꿈처럼
손가락들 사이로 놓쳐버렸는지도 모른다.
꿈도 없이 깊은 잠을 자도 지워지지 않는 어제의 끈질긴 소음들이 이명처럼 귓속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새벽녘에 저 먼 곳에서 들려오는 어떤 이의 간절한 외침을 가로막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어쩌면 오늘은 아무것도 새로 도착하지 않는다는 것,
부재와 헛된 기다림이 바로 오늘 내가 맞이해야 하는 최초의 손님이라는 것을 순순히 인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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